“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라는 말이 있지요. 괜한 말이나 행동을 했다가 오히려 창피를 당하는 경우에 자주 쓰입니다. 저도 가끔은 긴가민가 할 때, 차라리 입을 닫고 듣는 쪽을 택합니다. 우스운 것은 혹여나 들킬까 마음은 떨리면서, 표정은 무언가 안다는 듯이 혹은 무관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확신이 있어도 입을 닫는 것입니다. 괜히 말했다가 저 자신을 유별나게, 유난스럽게 볼까봐 평범하게 보이려고 진실을 덮고 침묵합니다. 이런 반복적인 행동은 곧 습관이 됩니다. 그리고 죄의 굴레 안에서 어쩌지 못하는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어 약한 것 중 약한 존재로 오셔서 뼈가 깎이는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 앞에서도 침묵으로 부인합니다. 그 보배로운 피의 신비함을 기꺼이 외면합니다.
침묵은 자신을 중간이라도 가게 하지만, 어쩌면 ‘평범한 신앙’이라는 틀에 갇히게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의 차원은 중간 정도의 신앙으로 ‘택’도 없는 데 말이죠. 저는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을 지내면서 다녔던 작은 한인교회에서 “평범한 신앙생활을 하라”는 쓴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구속사시리즈를 읽고, 봉사에 열을 올리는 저의 모습이 이 교회에는 다르게 비춰졌는지, 교회 전체가 수 개월간 저를 멀리 했습니다. 그 때 제가 떠나기 전날 한 성도분이 저를 아낀다며 해주신 말이었습니다.
전, ‘그렇다면 내가 과연 비범한 신앙을 갖고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니지요. 그리고 오히려 저의 신앙이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의 한없이 미숙한 모습도 평범한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고 작은 제가 교회와 예수님의 고난을 조금이나마 나눠질 수 있는 복을 받은 것 같아 역설적으로 감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루터기에서 많은 선후배 분들이 말씀 공부와 전도에 열심인 모습을 보며 전 아직 멀었다는 생각뿐입니다. 혹여 누군가 말했던 루틴에 의해 돌아가는 평범한 신앙에 머무르지 않길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교회의 아픔을 눈감지 않으며, 그 상처에 우리의 손을 포개어 위로와 기쁨의 그루터기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ㅡ 선교총무 정유진
(그루터기紙 18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