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는 자격도, 상황도 여의찮은 저에게 귀한 직분을 허락해주신 아버지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몇 해 전 호주 서부지역 퍼스에서 일 년 정도 생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 그곳에 도착해 거처가 정해진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교회였습니다. 낯선 땅에 불쑥 찾아가 외모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방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붙잡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님 한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는 장소, 하나님께 목놓아 기도할 수 있는 장소가 간절히 필요했습니다. 마치 거처를 이동할 때마다 제단을 쌓았던 아브라함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정말 살고 싶어서 교회를 찾았고, 은혜로 이끌어주신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과 은혜를 한없이 맛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저에게 신앙생활은 ‘Survival, 생존’이었습니다.
귀국 후, 그 때의 은혜를 서서히 잊어가고 있던 지난 겨울, 여러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쳐왔습니다. 평소 교회생활에 열중하는 저를 달갑지 않게 여기신 외할머니께서는 기회를 노렸다는듯 "잘 되는 일도 없는데 교회는 왜 다녀, 다니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나 복 받으려고 교회다니는 거 아니야, 그런 거면 진작에 안다녔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대답은 '생존을 위한 신앙생활'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홍수심판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70-80년의 세월동안 노동의 고역과 사람들의 비난을 감내하며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홍수심판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됩니다. 반면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콧구멍에 물이 차올라 숨이 끊길 때까지 깨닫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창 6:8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이며 일방적인 은혜를 입음과 입지 못함의 차이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방주를 지은 결과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가는 70-80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믿음의 방주를 온전히 예비한다면 끝날 심판에서 살아남는 생존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만약 죄에서 냄새가 난다면 썩은 냄새가 진동할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루터기 모두가 이 시대에 신령한 노아가 되어 죄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가는 곳마다 향기를 내며 결국은 끝까지 살아남아 남는 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ㅡ 부회장 이은진
(그루터기紙 182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