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사소한 것 하나부터 중요한 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끝나는 법이 없다. 사소한 기다림은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던지,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린다던지, 애인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다던지 등등이 있을 것이고, 중요한 기다림은 대학 합격 여부, 지원한 회사의 취직 여부 등이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기다림은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세상을 살면서 기다리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기다리지 않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보통 사람들보다는 기다림이 덜 할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라고 할지라도 죽음을 기다리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다른 기다림을 시작한다면 죽음에서 벗어날 방법이 생긴다.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으로 이 땅에 오셔서(골 2:9) 전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죽음을 이기신 유일하신 사람이자 하나님이시다. (롬 6:9) 그는 죽음을 기다리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오셔서 그를 믿기만 한다면 그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셨고(요 5:24), 기다림이라고는 전혀 없는 천국이라는 시원 통쾌한 땅을 약속하셨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도 감사하고, 힘겨운 세상살이에 지쳐 쓰러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말씀을 영접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기다림을 죽음의 기다림에서 생명의 기다림으로 옮겨 주고 싶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만약 그 기다림을 바꿔 줄 수 있다면 그들의 기쁨은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같을 것이다.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계속 바꾸면서 좋은 남편을 기다렸지만 그 갈증을 채울 수 없었고, 기다림 또한 계속될 뻔했다. 그러나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갈증이 해소되면서 기다림은 끝이 났다.(요 4) 죽음을 기다리던 자가 생명을 만난 것이다. 우리는 먼저 생명을 만나 기다리는 자들로써 죽음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다림을 전해 기쁨을 안겨줄 의무가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찬양선교팀 부팀장 김호현 그루터기
(그루터기紙 179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