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식 원로목사님께서는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는 차렷 자세로 정신을 집중해서 드려야 한다고. 이 말씀을 들었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세월이 감에 따라 그때 주신 말씀의 참뜻을 미약하게나마 알아가는 듯합니다.
차렷 자세는 군대에서 자주 쓰이는 말로 ‘상관 앞에서 하급자가 정신을 집중해서 바르게 서 있는 자세’를 일컫습니다. 즉, 예배를 드림에 있어 차렷 자세는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상급자가 되시며, 죄악 된 인간은 아버지 앞에 당연히 하급자이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여 서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구나 생각합니다.
구속사 시리즈 1권 ‘창세기의 족보’에는 아담이 죄를 지은 이후 참 예배가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셋의 아들 에노스 시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에노스의 때를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예배의 근본적인 정신과 자세가 확립된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근본적인 정신과 자세’는 ‘내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100% 수용하겠다는 자세’입니다. 죄악 된 인류가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정신 집중해서 상관에게 복종하여 예배드리는 자세, 차렷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차렷 자세로 예배드리는 것은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평강제일교회 주보 ‘생명의 양식’ 코너에 실렸던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에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1에서 말한 영적 예배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내가 종이 되는 태도이며, 주님을 위하여 내려가는 태도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내가 종이 되는 태도, 주님을 위하여 내려가는 태도’도 상관에게 복종하는 차렷 자세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군인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충성하듯이, 저희 또한 자신의 목숨을 산 제물로 바치는 예배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구절절 부족한 설명을 했습니다. 스스로 깨달을수록 저는 연약하며 차렷 자세로 예배드리는 것조차 온전히 행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나약하고 연약한 저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족보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찾고 부르짖는 일, 곧 예배드리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라는 말씀과 요한복음 4장에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신 말씀처럼, 계속해서 참된 예배를 위해 애쓸 때 아버지께서 온전한 차렷 자세로 예배드리게 해주실 그 한날을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차렷 자세로 예배드리는 저와 그루터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로 함께 은혜 나누신 모든 그루터기 분들이 함께 온전한 예배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ㅡ 김호현 예배부장
(그루터기紙 18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