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년 전 대학교를 졸업 하고 전공을 살려 선박 엔지니어로 4년 6개월간 승선 근무를 했었습니다. 20대 후반을 바다에서 보내면서 그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철창 없는 감옥’ 이었습니다. 배 위에서의 삶은 인생의 외로움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생활을 하면서 항상 생각했던 것은 ‘행복’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뭐가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했는지 다시 돌이켜 보았고, 결론은 ‘바리스타’ 였습니다.
29세에 승선 생활을 마친 후,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서 학원을 알아보던 중 친형의 권유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학원을 다니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제 마음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충돌했습니다. 하나는 오로지 나만 생각했을 때 내가 행복하고 즐거워했던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29세에 아르바이트하는 내 자신을 보니 회사 생활을 안정적으로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스펙, 스펙’ 하는 세상에서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없는 것이 한심했고, 부모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루터기 최이수양과 카페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고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그 친구의 권유로 평강제일교회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처음 갔을 때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습니다. 처음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작정 따라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기도를 해봤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내가 좋아하는 이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자신감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눈물이 났고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그때의 은혜와 감동이 지금 제가 여기 있을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3년차 평강인입니다. 만약에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삶을 뒤 돌아보면 제가 교회에 온 게 우연이 아닌 예비하여 주신 것이라고 확신이 섰던 그때, 그 인도하심에 놀랍고 감사합니다. 주일을 지키면서, 찬양을 하고 임원단이 되었고 리더로도 쓰임 받게 하셨고 세례도 받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나의 삶이 아버지의 은혜 안에 보살핌 안에 담대하게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해주셨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읽으면서 재미있는 건 내 삶에 빗대어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들고 고된 40년 광야 생활이 저에게는 4년 6개월간의 승선 생활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요셉의 삶을 볼 때 굳건히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나아가자 어떠한 역경 속에도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처럼 관리자 경험도 없고 경력도 짧은 저를 카페 매니저로 세워주셔서 이제는 나름 두 매장을 관리하는 매니저로 성장시켜주셨습니다.
저는 욥기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을 늘 되새기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버지를 믿고 따를 때 반드시 형통할 것을 믿고 내 카페를 갖게 되는 꿈과 동반자와 내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신앙생활로 인도 해 주실 것을 믿으며 오늘도 ‘아멘’입니다. 그루터기 여러분들도 각자 성경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며 희망과 목표를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 인도하심을 받아 소원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기를 다 함께 ‘아멘’입니다.
ㅡ 김승준 예배총무
(그루터기紙 18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