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눅 15:3-7)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태초이래 지금까지 어떻게 구속역사를 이끌어오셨는지 그 비결과 원동력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의 귀중성을 선포하시는 하나님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한 목자의 노력과 열심은 얼핏 비상식적으로 보입니다. 그 하나를 찾기 위해 나머지 99마리의 양들을 들에 방치하게 되면 더 큰 손실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99:1의 구도 속에서 세상은 당연히 하나를 잃더라도 아흔아홉을 지키며, 이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흔아홉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하나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마 16:26). 하나는 모든 것의 시작이요 동시에 마침이기도 합니다. 하나가 없이 둘이 있을 수 없고, 또 마지막 하나를 갖추지 못하면 99가 있더라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 한 사람을 이처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2. 찾도록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찾도록 찾으신다’는 말은 찾을 때까지 찾고야 말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한 마리 양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과 열정을 잘 나타내주는 말입니다. 사도바울도 교회를 세우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 ‘하나님의 열심’으로 열심을 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고후 11:2). 이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 남은 자를 통해 구속역사를 이어가시는데 있어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는 말씀(왕하 19:31, 사 9:7, 37:32, 겔 39:2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그 뜨거운 열심이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찾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열정으로 범사에 헌신하는 그루터기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죄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잃은 한 마리 양은 본문의 비유를 볼 때 ‘죄인’을 가리킵니다. 즉, 그가 ‘잃은 양’이 된 것은 목자의 말을 듣지 않고, 무리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욕심으로 이탈하여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아 허비한 탕자(눅 15:12)나 사도바울을 통해 은혜를 받았음에도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난 데마나 그레스게 등의 일당과도 같습니다(딤후 4:9-11).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99마리의 양뿐 아니라 죄를 짓고 목자를 떠난 한 마리 양까지 끝까지 품으십니다. 그 사랑이 결국 죄인을 돌이키고 그 기쁨을 벗과 이웃과 함께 누리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힘이 지금까지 구속사를 이어온 원동력이라면, 이제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응답자가 되어 주를 위해 더욱더 헌신하고 충성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ㅡ 그루터기紙 1864호

홍봉준 목사

조회수 59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오늘 본문은 야곱의 약전(족보, 삶의 결과)을 말씀하면서 요셉에게 형제들과 다른 옷을 입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람의 신분, 지위, 능력 혹은 그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옷을 입은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사명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채색 옷', 다른 사람과 구별된 '별다른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에스겔 성전의 이상을 보여주시면서 성전의 제도, 식양, 출입하는 곳, 형상, 규례, 율례를 알려주신 후 성전의 모습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파괴되고 불태워진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새 성전에 관한 이상을 에스겔에게 나타내시고, 그 이상의 내용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풍족을 누리면서 사는 삶일까요? 그런 기준이라면 ‘잘 사는 성도’ 또한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여유를 누리면서 사는 성도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기준으로 ‘잘 사는 성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죄의 담으로 막혀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1. 잘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