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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적을 이루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마 2:1-12, 눅 2:1-7)

예수님이 탄생하던 때는, 로마의 가이사 아구스도가 통치하며 ‘천하로 다 호적하라’(눅 2:1)명령했던 때이다. 이에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갔다가,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미 5:2). 이렇게 예언이 성취되던 때에, 또한 땅의 호적이 이루어지던 때에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과 영접하지 않은 자들로 나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

(1) 헤롯왕의 성탄(마 2:1-18): 헤롯은 ‘에서 후손 이두매인’ 사람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는 동방박사의 질문에 대노하며 ‘나 외에 다른 왕’이 있을 수 없다 하여 2세 이하의 남아를 학살했다.

(2)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성탄(마 2:4): 그들은 헤롯이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물었을 때,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서 탄생하실 것을 헤롯왕에게 알려줬지만, 정작 본인들은 가지 않았다(머리로만 맞이하는 성탄).

(3) 예루살렘 시민들: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에 예루살렘에 소동했지만(마 2:3), 예수 앞으로 간 자들은 없었다.

(4) 베들레헴의 성탄: 예언대로 둘도 없는 성자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했지만, 예수님을 냉대하고 사관이 없어 구유에 누이게 하였다(눅 2:7).



2.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성탄 마중)

(1) 동방박사들: 이들은 동방에서(페르시아)부터 ‘그의 별’(민 24:17, 마 2:2)을 보고 약 1천 km의 거리를 뚫고, 예수를 맞으려는 한 목적을 가지고 고독한 여행을 하며 베들레헴으로 와서 예수께 경배했다.

(2) 예수께서 성탄 하신 거룩한 밤, 양을 지키며 깨어있던 목자들에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되리라’(눅 2:12)라며 예수의 탄생 소식을 전했다. 그들은 곧바로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구원의 표적을 목격하였다(눅 2:8-12).

(3) 시므온과 안나: 날마다 성전에서 기도하며 메시아를 대망하면서, 결국 그의 눈이 주의 영광을 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다 감당하였다(눅 2:25-35). 이들은 인생의 종무식을 예수를 영접하고 잘 마무리했다.



결론 : 이 땅에 하늘 호적하러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눅 2:1)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아포그랍호=등록하다, 기록하다) 하라 하였으니

예수님이 탄생한 시기는 천하에 모든 사람이 호적하던 시기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 호적을 이루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과 내가 가족관계가 되는 최고 축복의 날이 성탄이다. 예수를 영접하는 자들, 곧 ‘하늘에 기록한(아포그랍호) 장자들의 총회’(히 12:23)에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성탄 하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였는가?.

#최고의 축복의 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의 보배합을 열어 예수께 드리고(마 13:44), 예수를 나의 가장 귀중한 보배로 모시는 삶을 살자(골 2:3)!


오인정 전도사

2020년 12월 20일 정기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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