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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 _ 왕상 15:1-5

오늘 말씀은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아비얌)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비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이시다’입니다. 아비야는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모시고 산 자가 되지 못하고 악한 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부친 르호보암의 행한 모든 죄를 행했기 때문입니다(왕상 15:3). 그러면, 아비야가 르호보암을 따라한 범죄는 무엇입니까?



1. 노인들의 가르침을 무시했습니다(왕상 12:8).

노인은 장로, 오랜 삶의 경륜과 지혜를 가진 자를 말합니다. 아비야의 부친 르호보암 때의 노인은 솔로몬의 지혜를 보고 배운 자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입니다(왕상 3:9-28). 또한, 노인이라는 단어는 제사장을 표현할 때도 사용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비야는 그의 아버지 르호보암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가르침을 무시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대하 12:1).

아비야의 부친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아비야도 나라가 강성할 때,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 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버렸습니다.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둘째 부인의 아들로 왕이 될 자격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자입니다(대하 11:11-19).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야 했던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남유다를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도 대승케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비야는 르호보암과 같이 나라가 강성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3. 우상을 세우고 섬겼습니다(왕상 14;22-24).

아비야도 그의 아비 르호보암처럼 우상을 숭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은 것입니다. 다윗은 늘 성전을 향한 신앙,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비야는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결론. 아비야의 삶의 결론은 늘 전쟁의 삶, 평강을 잃어버린 삶입니다.

아비야의 남유다 통치 3년 동안 늘 전쟁이 있었습니다(왕상 15:7).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못하는 자에게는 나라 간의 싸움, 자신의 삶이 전쟁으로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 형제지간에 평강을 잃어버린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심으로 하나님이 기억해주셔서 샬롬, 평강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나다나엘 목사

2021년 05월 02일 정기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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