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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10-14)

해마다 성탄은 모든 인류에게 새로운 소망과 기쁨을 주는 절기입니다. 천사의 증언과도 같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온 인류에게 가져다 주는 성탄을 맞아 큰 축복이 임하길 바라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찬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일까요?



1. 온 백성에게 미칠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모든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유대인만을 위하거나 특정 나라, 인종, 계급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차별과 장벽들이 있습니다. 인종과 계급과 권력으로 수많은 계층이 나눠지고,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힘들과 괴로운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탄생은 그러한 모든 장애물과 장벽을 제거하고 둘로 하나를 만드시는 화평의 길을 여셨습니다.

에베소서 2:14 말씀을 볼 때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이처럼 여러 가지 장벽에 둘러 쌓여 소망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인류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 것입니다. 특별히 연약한 자들에게는 더 큰 희망의 소식이기도 합니다. 찬송가 411장 가사처럼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라는 말씀이 주님의 탄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기도의 응답으로 아들을 얻은 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때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 2:8)“라고 하였습니다. 하나의 노래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비로소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므로, 온 백성에게 비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 것입니다.



2. 나를 위한 탄생이므로 기쁨의 소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신의 삶을 살도록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사이라 할지라도 부모를 위해 태어난 자식이 없고, 주인을 위해 태어난 종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각자 하나님이 지으시고 이 땅에 보내신 자신만의 목적과 삶을 위해 태어났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다윗의 동네에 나셨다고 천사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 9:6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나신 분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입니다. 예수님 자신의 삶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삶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나신 분입니다.



3.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위한 탄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되는 탄생입니다. 하늘과 땅 모두에게 영광과 평화가 가득 넘치는 탄생, 온 우주적인 축복을 가져오는 탄생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그 탄생으로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기쁨과 평화가 되고, 땅에 임하는 평화로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을 받는 탄생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영광과 평화의 근원이 되는 주님의 탄생이기 때문에 온 인류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념하는 절기가 된 것입니다.



ㅡ 그루터기紙 1886호

홍봉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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