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음에도 불구하고 잊어주시는 은혜_(대하 33: 10-13)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뒤를 이은 남 유다의 열네 번째 왕으로, 남과 북을 통틀어 55년간 가장 긴 통치를 했지만, 가장 극악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므낫세의 이름의 뜻은 ‘잊어버림, 잊어버리게 하셨다’ 이다. 그 이름의 뜻처럼 므낫세는 무엇을 잊어버리고 살았는가?



1. 잊어버리다

(1) 므낫세는 하나님과 율법을 잊어버리고 악을 행했다(왕하 21:2-9). 산당들을 세우고, 바알을 위해 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했고, 인신 제사를 하며 신접한 자들과 박수를 신임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

(2) 성전 안뜰과 바깥 뜰에 우상의 단들을 세워(왕하 21:4-5), 하나님께 도전했다.

(3) ‘므낫세의 꾐’을 받고 백성이 같이 악을 행했다(대하 33:9-10).

(4) 경건하고 무죄한 사람들을 학살하여 경건한 신앙의 흐름을 차단하므로 영적 암흑시대가 왔다(왕하 21:16, 24:4). 유대 전승에 의하면, 므낫세는 이사야 선지자까지 톱으려 켜서 죽였다고 한다.

(5) 이러한 므낫세의 악정에 대하여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셨다.(왕하 21:13)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배반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듯이(왕하 18:9-12), 이제 같은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한 남유다도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셨다.



2. 잊어주시다

(1) 므낫세는 통치 말년 앗수르에 쇠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가면서 비로소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크게(메오드-최상급) 겸비하여 회개했다.

(2)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때 다 용서(잊어주심)해 주신다(욥 4:7).

‘겸비(카나)’란, ‘항복하다, 무릎을 꿇다, 굴복하다, 엎드리다’라는 뜻으로,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고 마음 중심으로 회개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받으셔서 왕권을 회복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므낫세와 같은 악질적인 왕도 환난을 당하여 회개할 때 용서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거룩한 계보를 잇는 믿음의 통로로 삼아주셨다.



결론 : 회개는 옛 생활을 청산하는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

므낫세는 회개 후, 이방 신들과 성전의 우상을 제거하고, 예루살렘에 쌓여 있는 모든 단을 깨뜨렸고, 성전의 단을 중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백성에게 하나님만 섬기며 제사를 드리게했다(대하 33:14-17). 회개는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파하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의 죄악된 생활을 완전히 끊어 버리는 의지적인 결행이다(사 55:7).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칼을 갈으시고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신다(시 7:12). 나는 비록 하나님을 잊고 살았지만, 회개할 때 하나님은 나의 모든 죄를 다 잊어주신다(행 3:19).


오인정 전도사

2021년 10월 10일 정기집회

조회수 3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오늘 본문은 야곱의 약전(족보, 삶의 결과)을 말씀하면서 요셉에게 형제들과 다른 옷을 입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람의 신분, 지위, 능력 혹은 그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옷을 입은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사명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채색 옷', 다른 사람과 구별된 '별다른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에스겔 성전의 이상을 보여주시면서 성전의 제도, 식양, 출입하는 곳, 형상, 규례, 율례를 알려주신 후 성전의 모습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파괴되고 불태워진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새 성전에 관한 이상을 에스겔에게 나타내시고, 그 이상의 내용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풍족을 누리면서 사는 삶일까요? 그런 기준이라면 ‘잘 사는 성도’ 또한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여유를 누리면서 사는 성도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기준으로 ‘잘 사는 성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죄의 담으로 막혀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1. 잘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