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기도하는 자만 있으면 _ 겔 22:23-31, 막 9:28-29

본문이 속한 에스겔 22장의 1-16절까지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상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고이고, 두 번째 17-22절은 금속을 녹여서 그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전쟁, 환난의 바람을 일으켜서 멸절할 것을 예고한 것이며, 본문인 23-31절은 각 계층 노동자와 장사꾼, 사업가, 나라의 왕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 구석구석의 온갖 죄악을 고발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말끔하게 심판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1. 지금은 국가의 위기를 막아 줄 한 사람의 기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패망했습니다. 이유는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은 훼파되었으며, 성전은 무너져 터만 남고 재산은 바벨론으로 반출됐고,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렇다면 응당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광복을 위한 재건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폐허 위에 재건을 하고, 더 큰 재난의 방지를 위해 성을 쌓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채찍이 개인 신상이나 가정, 국가에 임하게 될 것을 보고, 막아서서 무너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자를 찾으시다가 없으므로 그 진노를 쏟으셨다고 했습니다(겔 9:4-6, 22:30).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 하나가 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 방패처럼 막아서서, 힘써 부르짖는 한 사람만 있다면, 이 민족이 망하지 않고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렘 5:1). 국가를 위한 최고 최대의 헌신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의인 한 사람의 기도가 가장 큰 재산이요, 국방력입니다.



2. 각계각층에 진정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첫째, 이스라엘 백성 중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상과 음란으로 가득하고 그들의 소행은 포학과 유혈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방백들에게서 찾으셨습니다. 방백은 오늘날의 고급 공무원을 말합니다. 이들은 직업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일로 나라를 위해 성을 쌓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탐관오리들이어서 식물을 움키는 이리처럼 불의의 이익을 취하기에만 급급한 부정축재자들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제사장들에게서 찾아보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 자신들이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별치 않았으며,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혼동하여 스스로 율법을 위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찾으시려는 사람을 만날 수 없으셨습니다(눅 11:39).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선지자들을 살펴보셨습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특사로 부패한 정치를 고발하고 타락한 종교를 수술하는 신앙과 정의의 대변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도 실망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우는 사자처럼 식물을 움키고 있어서 방백보다 그 부정의 농도가 도리어 더욱 심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옛날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우리 민족도 6. 25때 북한이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와 파죽지세에 이르렀던 쓰라린 경험이 있는 만큼, 지금도 국가 민족을 위하여 다가올 위기를 막아서서 성을 쌓는 사람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결 론 : 한 사람 의인을 소유함이 나라의 국방입니다.

불의는 나라를 패망케 하고 의는 나라를 흥왕케 한다고 했습니다(잠 14:34).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고, 불의가 범람하여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고, 공의가 팽창하여 흥하지 않는 나라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기도의 중보자로서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았습니다(삼상 12:23-25).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을 쌓는 것보다 더 큰 방패가 됩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이 나라 마병과 병거, 신령한 무기요 국방이 되시기 바랍니다. 책임지고 기도하는 기도의 용장, 무너진 성을 쌓고, 혹시 적이 쳐들어올까 봐 성을 단단히 지키는 믿음의 신령한 파수꾼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잠 14:34).


휘선 박윤식 목사

2021년 06월 20일 정기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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