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의 생활을 마치는 시점,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요단강 앞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를 내가 모세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너를 이스라엘 목전에서 크게 해 주시겠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되 오늘부터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부터의 의미는 현재의 시점에서 새로운 시작과 매일 매일 새로운 시작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의 축복은 어떤 자가 받게 됩니까?
첫째, 준비의 시간을 채우는 자입니다. 본문의 오늘부터의 축복은 삼일이라는 준비의 기간을 채울 때에 역사하였습니다(수 3:2-3). 우리에게도 오늘부터의 축복, 새로운 시작이 되기 위해 준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볼 때, 준비의 기간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일들이 있습니다. 종된 자에게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희년은 50년의 기간을 채워져야 합니다.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이 찼을 때에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도 모세의 시종으로 준비의 기간을 채우므로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수 1:1). 그렇기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준비의 시간이 찰 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도 그러한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말씀의 뒤를 좇아야 됩니다. 오늘부터의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뒤좇을 때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수 3:3).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좇아 가야합니다. 만약, 말씀을 좇지 않고 말씀을 앞서 나가는 곳에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말씀보다 앞선 자는 절도, 강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10:8). 우리가 직분을 감당할 때도 말씀을 좇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서 먼저 기도하고 말씀을 의지하여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상거를 두어야 합니다. 상거를 두되 이천 규빗을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는 이스라엘 200만명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수 3:4). 그렇다면, 왜 상거를 두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직접 체험케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동안 불기둥, 구름기둥, 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물이 나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은혜 안에 있기에 그 은혜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를 소홀히 여겼습니다. 상거를 두므로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또한, 축복의 근원, 법궤를 발견케 하기 위해서 상거를 두게 하신 것입니다.
결론.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는 말씀에 전적인 순종을 의미하며, 말씀을 책임지는 행동과 삶이 있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그 때에 오늘부터 시작하여 크게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 그루터기 모두가 그런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나다나엘 목사
2021년 09월 05일 정기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