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눈길 가는 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광고와 진열된 물건들의 디스플레이 등은 어떻게 해서든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아 더 많이 판매하고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을 이 세상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 바라보라고 권면하는 히브리서 기자의 뜻은 무엇일까요?
1. ‘바라보자’라는 말의 의미
‘바라본다’는 것은 먼저 시각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볼 때, 예수에 대한 앎, 이해,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야구선수가 야구공에만 집중할 때 실제보다 크게 보여서 안타를 쳐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일종의 영적 행위를 가리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시 121:1)라고 고백했던 시편 기자의 말속에서 예수를 바라본다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바라봄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사람은 동시에 앞과 뒤를 볼 수 없습니다. 집중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에만 나의 시선을 집중하고 마음을 쏟는 것입니다.
1)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고 하였는데, 이 말은 직역하면 ‘노아가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노아와 하나님이 서로를 향해 바라보고 눈을 떼지 않고 생활한 것을 증거 해주는 말씀입니다. 노아는 이처럼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써 홍수 심판 가운데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고, 방주 건축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2) 아브라함은 예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습니다(요 8:56). 아브라함이 2천 년 뒤에 오실 예수를 어떻게 볼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당연히 예수님의 육체를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이루실 구원의 때를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늘 그때를 고대하고 드디어 성취된 세계를 믿음으로 보고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3) 모세는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자신의 눈 속에 담아두었습니다(신 3:27). 40년 광야 노정을 인도했던 영적 지도자 모세!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눈을 들어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눈에는 꿈에도 그렸던 가나안 땅을 그냥 스쳐지나 보지 않고 눈에 담아두고 마음에 새겨두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대상은 늘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큰 바위의 얼굴>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위대하고 큰 인물을 늘 바라보고 마음속에 동경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이 그렇게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바라보면 예수의 삶을 따라서 살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 너머에 있는 생명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과 죽음마저 이기셨던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걸으셨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루터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ㅡ 그루터기紙 1897호
홍봉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