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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임한 큰 희락 (대하 30:26-27)

남유다 13대 왕인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의 단행을 통해 성전청결과 유월절 규례를 지키는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이 ‘큰 희락’의 비결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희락’의 의미와 ‘히스기야’의 이름의 뜻


‘희락’(히, ‘심하’)은 ‘유쾌함, 즐거움’ 등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큰 기쁨을 가리킵니다(시 4:8, 43:4). 히스기야의 이름의 뜻은 ‘강하다, 견고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하자크’와 ‘여호와’의 줄임말 ‘야’의 합성어로 ‘여호와께서 나의 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물질이나 권력을 의지하고 자신의 힘으로 삼는 풍조 속에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 되신다고 하는 ‘히스기야’ 이름의 뜻은 큰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2.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


1) 성전 청결 : 히스기야 왕의 종교개혁은 성전을 청결케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① 닫혔던 성전 물들을 모두 열고(대하 29:3) ② 꺼졌던 성전 등불을 밝히며(대하 29:7) ③ 그쳤던 성소의 분향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한 규례로 명령한 것이었음에도 부친 아하스 왕 때 다 폐지되고 만 것들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어 문을 열고 등불을 밝히고(출 27:20-21) 분향을 재개함으로써 성전이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정상화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처럼 금년 한해 우리의 모든 닫힌 문이 열리고, 성소의 등불을 환히 밝히며 기도의 향이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출 30:7, 계 5:8, 8:3-5).


2) 예배와 감사 :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수송아지와 숫양 일곱, 그리고 어린 양과 숫염소 일곱을 끌어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을 드리게 하였고, 제물에 안수함으로써 백성들의 죄를 전가시켜 사함 받도록 하였습니다. 번제를 드릴 때는 노래하며 나팔을 불며 악기를 연주하여(대하 29:25-28) 죄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체험케 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감사의 제물을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데, 짐승의 가죽을 벗길 제사장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대하 29:32-34).


3)유월절 절기를 지킴 : 유월절은 원래 정월 15일에 지키는 절기였으나 성전 청결과 개혁 작업 등으로 인해 부득이 한 달을 늦춰 2월 15일에 지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보발군들의 공지를 들은 백성들은 비웃고 조롱할 뿐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께 귀순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귀순’의 문자적 뜻은 ‘손을 드리다’로서 항복의 의미를 갖습니다. 모두가 이 명령을 비웃은 것과 달리 아셀과 므낫세, 스불론 사람 중 몇이 스스로 겸비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온 유다 사람을 감동시켜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고 두 번 연이어 드릴 정도로 백성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통해 백성들이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게 할 때 감사와 큰 희락이 온 예루살렘에 넘쳐났습니다. 금년 한 해 그루터기들의 삶 가운데도 이러한 희락이 넘쳐나길 바랍니다.



ㅡ 그루터기紙 1891호

홍봉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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