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독교를 역설의 종교라고 합니다. 이는 십자가 고난 속에서 부활의 새 생명을 꽃 피우고, 고난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주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 당하신 주님의 모습을 증거하며 그곳에 임하신 역설의 은혜를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1. 주님이 걸으신 고난의 길
이사야 선지자가 증거하는 주님의 고난의 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질고와 슬픔을 당하신 길”입니다. 여기서 ‘질고’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말하며, ‘슬픔’도 병으로 인한 고통을 뜻합니다(욥 33:19, ‘병상의 고통’).
둘째는 “찔림과 상함을 받는 길”입니다. ‘찔림’은 ‘구멍을 뚫다’라는 단어로서 가시 면류관과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고 양손 양발에 못을 박힌 고통을 가리킵니다. ‘상함’은 ‘깨뜨리다’는 뜻으로 그의 온 육신과 마음이 깨지고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가리킵니다.
셋째는 “징계와 채찍을 맞는 길”입니다. 주님의 고난이 바로 나의 죄와 허물로 인함인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징계를 당해서 채찍을 맞는다고 생각했으니 예수님이 얼마나 원통하고 몸과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2. 주님의 아픔을 더 무겁게 만든 우리의 죄악들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의 이러한 고통을 더 아프게 하고 무겁게 한 것은 사람들의 무지와 오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징벌로 생각하며 비웃고 조롱한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도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있는가”(욥 4:7)라며 욥의 고난이 그의 죄 때문이므로 회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책망했습니다(욥 42:7).
주님의 고난은 대속적인 고난이요 나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고 우리에게 참 평안과 안식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 과정에서 주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습니다(히 5:7-9). 우리의 무지와 조롱에도 주님은 그러한 우리의 죄악까지도 짊어져 ‘영원한 구원의 근원’을 이루시는 역설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결 론 : 주님의 고난의 발자취는 ‘고난을 통해 생명을 주시는 역설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런 주님을 이사야 선지자는 ‘질고를 아는 자’(사 53:3)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질고, 고난에 대해서는 주님보다 더 많이 아는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고난 전문가’이신 주님은 오히려 그 고난과 질고를 통해 부활의 은총과 능력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역설의 은혜, 역설의 능력을 금번 사순절 기간에 체험하고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ㅡ 그루터기紙 1848호
홍봉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