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0-48장은 에스겔 성전에 관한 내용으로 성경 66권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여호와삼마는 히브리어로 예호바샴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라는 뜻이다. 여호와삼마의 축복은 어떤 축복인가?
1.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는 축복
여호와삼마의 복을 주신 이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그발강가 데라빕’에서 대운하 공사에 노동자가 되서 일하고 있을 때이다(겔 35).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와 삼마의 복을 주셨다. 너희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지만, 회복시켜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1) 사로잡힌 지 25년
에스겔 선지자는 주전 597년, 바벨론 2차 포로로 끌려갔다. 그 뒤 사로잡힌 지 25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햇수로 계산하면 주전 573년이다 (BC597 – BC573 = 24).
에스겔 40:1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2)성이 함락된 지 14년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것은 3차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때로 주전 586년이다. 성이 함락된 지 14년을 햇수로 계산하면 주전 573이다 (BC586 – BC573 = 13).
에스겔 선지자가 그발강가에 있었을 때, 하나님이 순간 권능으로 에스겔을 이끌어서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서 성전의 계시를 보여주셨다(겔 40:1). 그발강가 데라빕에서 이스라엘 땅까지 1000km가 넘는다. 그런데 순간 데려가신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다(막 9:23).
우리도 여호와 삼마의 복을 받으면 지금까지 잃어버린 것을 다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한테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땅을 뺏겼다 (삼상 7:12-14). 이 땅을 하나님이 다시 찾게 해주심에 돌을 하나 세우며 감사했다. 그곳 이름을 ‘에벤에셀(도움의 돌)’이라 하였는데,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의미다.
2. 현재 나의 삶의 처소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축복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에스겔 성전이 들어가는 땅을 보여주셨다. 에스겔 48:8, 20에 ‘예물로 드리는 땅’이다. 예물로 드리는 땅은 3개로 나뉘는데 ㄱ. 레위지파의 땅(겔 48:13) ㄴ. 제사장의 땅(겔 48:9-10) ㄷ. 백성들이 사는 성읍과 기지(겔 45:6) 이다.
하나님이 ‘여호와 삼마’ 내가 거기 있겠다고 선포하셨다. 우리 생각에는 그 말을 아마도 제사장의 땅에서 하셨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여호와삼마의 복은 작은 ‘성읍’에서 선포하셨다. 성읍은 백성들이 사는 곳이다. 이 말은 우리가 공부하는 곳에도, 일하는 곳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성읍은 ‘속된 땅’이라고 말씀하신다(겔 48:15, 35).
성경에서는 ‘속된 것은 죄고 악이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속되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홀’ ‘일상적인, 보통의’를 뜻한다. 먹는 일, 일하는 것, 장사, 모든 것이 다 속된 것이다. 이 속된 땅이 여호와 삼마의 복을 받아서 거룩한 땅으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이 늘 거기 계시다는 것을 믿고 늘 동행하면 그 땅이 속된 땅이지만 거룩한 땅으로 바뀐다.
결 론: 여호와삼마의 축복은 영원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우리가 나쁜 생각하고 죄짓고 살면 성령님이 근심하게 된다(엡 4:30). 여호와 삼마의 복이 임하는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영원히 임재하시기 때문에 죄나 사망이나 나쁜 생각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슬픈 것이 없는 세계이다. 영원한 임재는 그 날이 되면 이뤄진다.
에스겔 48:35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1) 그날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주전 537년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다.
2) 궁극적으로 이 날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 타락한 세상 바벨론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가 이루어지면 사단마귀가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계21:10, 18:4).
오늘부터 아버지께서 ‘여기 나와 함께 하신다’ 믿고 무엇을 하든지 승리하는 그루터기 되기를 바란다.
ㅡ 그루터기紙 1837호
이승현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