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며, 온전히 하나님을 좇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 선지자들과 ‘누가 살아있는 참 신인가’를 판가름 내기 위해 갈멜산에서 대결합니다.
‘머뭇머뭇하려느냐’로 번역된 히브리어 ‘파사흐’는, ‘다리를 절다, 절뚝거린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의 매우 위태로운 신앙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죠.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면, 두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그리고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7-8)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든 그루터기가 이제는 머뭇거리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을 좇는 믿음의 청년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침묵(왕상 18:21)
이러한 백성들의 행동은 1) 하나님보다 아합왕을 두려워했음을 보여줍니다. 2) 이미 백성들의 마음은 바알에게로 더 기울어져 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보다 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한다면, 또 이미 우리의 마음 중심이 세상에 더 기울어져 있다면 우리 또한 침묵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 이후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요구할 때, 결단코 하나님을 버리지 않겠다(수 24:15-16)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고백이 우리에게도 넘쳐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말씀의 역사는 사람의 숫자와 상관이 없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한 명과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50명의 대결은 너무나도 불공정한 대결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모을지라도 결코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몸에 상처를 내며 큰 소리로 그들의 신을 불렀지만, 아무 응답이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가 없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도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도울 힘이 없습니다(시 146:3). 우리 성도를 지켜주시고(시 121:3-8), 도와주시는 분(사 41:10)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확신하는 그루터기 여러분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결론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고 간구하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바알 선지자들의 제사에는 아무 응답이 없었지만,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할 때 여호와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 흙까지 태우고 심지어 도랑의 물까지 핥았다(왕상 18:38)고 말씀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 그루터기들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마시고(눅 18:1), 이제는 머뭇거리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믿음으로 당당히 서는 우리 청년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조현우 전도사
2021년 02월 28일 정기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