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야곱의 장례행렬에 담긴 구속경륜 (창47:29-31,50:1-14)

1. 야곱의 장사를 준비하는데 110일이 걸렸습니다.

창50:2-3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1) 향 재료를 넣는데 40일 - “향 재료를 넣는 데는” 히브리어 ‘하나트’로써, ‘썩지 않게 방부처리를 하다, 미라를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야곱을 썩지 않게 보관한 다음, 자식들이 그 시신을 메고 가나안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2) 애굽 사람들이 70일 동안 애곡하는 기간 까지 장례 준비 기간은 총 110일이 걸렸습니다.



2. 야곱의 장례 행렬의 이동 거리는 692km 였습니다.

애굽의 고센에서 헤브론까지 가장 빠른 길은 브엘라해로이에서, 브엘세바를 거쳐 헤브론까지 126km만 올라가면 도착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빠르고 쉬운 길로 가지 않고 브엘라해로이에서 아라바길로 돌려서 출애굽의 노정처럼 왕의 대로를 따라 얍복강과 요단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요단강을 건너 헤브론까지 692km를 거꾸로 내려온 것입니다(창50:10-11).



3. 야곱의 장례 행렬은 30일 정도 걸렸습니다. (장정들이 하루 걷는 속도 24km)

692km의 거리를 생각할 때, 약 29일 정도 걸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사 준비 기간 하루 정도를 생각하여, 장사 행렬은 30일 정도 걸렸을 것입니다. 30일 동안 1톤이 넘는 야곱의 관을 메고 자식들이 이동을 한 것입니다. 언약을 성취하는 길은 험하고 먼 길입니다. 끝까지 서로 협력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하고 충성하지 않는다면 언약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4. 야곱의 장례 행렬에 담긴 구속경륜


1) 출애굽 해서 걸어가야 할 길을 미리 걷게 하신 것입니다.

야곱 당시에 대부분 가나안땅을 밟아보지 못한 사람들이었기에, 미리 그 길을 걷게 하심으로 출애굽의 날과 약속의 땅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계승한 것입니다.


2) 아버지 야곱의 생애를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야곱의 17노정 가운데 10군데 장소를 거쳐 장례행렬이 지나갔습니다. (애굽-브엘라해로이-마하나임-브니엘-숙곳-세겜-벧엘-베들레헴-에델망대-헤브론)


3) (아버지를 기억하며) 아닷타작마당에서 7일간 애곡하였습니다.

창50: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아닷’은 히브리어 ‘아타드’로써 가시나무 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자식들은 10장소 한곳 한곳을 지나면서 아버지에게 우리가 다 가시가 되어서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것을 회개하면서 전체가 다 통곡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결 론: 가나안 입성 직전 아닷타작마당에서 있었던 회개의 역사 이후 가나안에 입성하였듯이 우리 속에 수 없는 가시들을 아닷타작마당에서 다 빼내는 회개의 역사가 있어야 천국에 입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 신령한 야곱의 자식들이 되어서 끝까지 협력하여 언약을 메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나가 되어 구속사를 완성하기를 바랍니다.


ㅡ 그루터기紙 1831호

유근영 전도사

조회수 129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오늘 본문은 야곱의 약전(족보, 삶의 결과)을 말씀하면서 요셉에게 형제들과 다른 옷을 입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람의 신분, 지위, 능력 혹은 그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옷을 입은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사명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채색 옷', 다른 사람과 구별된 '별다른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에스겔 성전의 이상을 보여주시면서 성전의 제도, 식양, 출입하는 곳, 형상, 규례, 율례를 알려주신 후 성전의 모습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파괴되고 불태워진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새 성전에 관한 이상을 에스겔에게 나타내시고, 그 이상의 내용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풍족을 누리면서 사는 삶일까요? 그런 기준이라면 ‘잘 사는 성도’ 또한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여유를 누리면서 사는 성도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기준으로 ‘잘 사는 성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죄의 담으로 막혀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1. 잘 사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