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출 1:1-7)

오늘 본문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연결하는 경첩과도 같습니다. 야곱의 70가족이 애굽에 들어온 후 400여 년이 지나 그 후손들이 애굽을 떠나려는 시점을 연결해주고 있으며, 그 동안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음을 강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이름의 책’, 출애굽기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의 애굽 탈출과 성막 건축의 두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의 책 제목은 출애굽이나 성막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베엘레 쉐모트’로서, 직역하자면 ‘이들은 ~의 이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본문 2절부터 5절까지 야곱의 12 아들들의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건국의 아버지’로서 이들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구속사역을 위해 크게 기여한 성도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빌 4:3).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에 헌신한 사람들의 이름을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구별하여 기록하였습니다(느 10:1). 이를 통해 오늘 구속사의 사명을 받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또한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될 줄로 믿습니다.




2. 리더십 시프트(Shift)

본문의 핵심은 창세기에서 출애굽기로 넘어오면서 리더십의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46:7에서는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에 들어온 리더였습니다. 그런데 본문 1절에서는 ‘이스라엘 아들들’이 아버지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들을 데리고 애굽에 들어온 리더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족들을 이끈 리더였으나(창 11:31), 가나안 땅에 도착하는 성공을 이룬 리더는 아브라함으로 교체가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창 12:5). 출애굽의 리더는 모세였으나, 가나안 땅 정복과 분배를 이끈 리더는 그의 시종에 불과했던 여호수아였습니다(수 1:1, 24:29). 이처럼 성경은 시대가 지나면서 과거의 업적과 사명을 이어받은 새로운 일꾼들이 등장하고, 그들에 의해 구속역사가 중단없이 전진하고 있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과거 믿음의 선진들의 터 위에서 이제는 그들을 우리의 어깨에 걸머지고 구속사의 최전선에 서서 달려가는 새로운 영적 리더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3. 새로운 시작과 번성


본문 6절은 “요셉과 그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만 보면 참으로 절망적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과 언약은 이제 이를 감당해야 할 주인공들의 죽임으로 모두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7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은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라고 반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야곱의 후손들은 죽었지만, 이스라엘은 번성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이자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시간이 흘러가고 환경이 변해도 변함없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점점 번성하고 온 땅에 충만케 된다는 소망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영적 의미입니다. 오늘 믿음으로 신령한 이스라엘인 모든 그루터기 여러분들도 온 땅에 충만케 되길 바랍니다.



ㅡ 그루터기紙 1884호

홍봉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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