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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본질 (골 1:20)

최종 수정일: 2018년 7월 2일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십자가는 본래 헬라인, 로마인, 초대교인들에게 사형 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시대에 국교가 되면서 생명의 의미가 부여된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의 십자가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1. 십자가는 원래 저주(詛呪)를 나타냅니다(신 21:22, 23).

율법의 저주는 곧 사망이었습니다(롬 6:23上).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형벌인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인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하지는 않았습니다(신 21:22). 다만 죽은 사람의 시체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음으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라는 것을 나타냈습니다(신 21:23, 수 10:26). 하나님의 규정대로 율법의 저주 아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신 27:26, 갈 3:14).



2. 십자가는 속죄(贖罪)를 나타냅니다(롬 3:24,25).

성도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이며 그의 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셨습니다(롬 3:24-25).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많은 사람을 섬기고 당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45). 또한 바울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고백했습니다(엡 1:7). 구원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요 3:17).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기만 하면 영생(永生)을 얻게 될 것입니다(요 3:14-15).


3. 십자가는 승리(勝利)를 나타냅니다(골 2:13-15).

우리는 원죄(아담), 유전죄(조상), 자범죄(자신)로 인하여 이미 죽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이 모든 죄를 못 박으시고 그와 함께 죽어 죄 사함을 받고 또한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나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결국 십자가로 승리하신 그 승리의 해택을 입었습니다(골 2:13-15, 요 16:33, 요일 5:4).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치욕과 절망을 느끼며 다들 주님 곁을 떠나 각기 자신의 길로 떠났습니다(사 53:6, 눅 24:13, 요 21:1-3). 하지만 이런 치욕과 절망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진 죄인들도 십자가의 승리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역사를 이루어 냈다는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골 1:20).


결론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고 그와 함께 장사되어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새 생명 가운데로 행하게 하신 은혜를 입었습니다(롬 6:1-4). 그러므로 남은 생애동안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고 또한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는 십자가의 군사로 살아가기를 살아계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고전 1:23, 2:2).



─ 청년 2부 그루터기 담당, 김영수 목사

(그루터기紙 18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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