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 나이가 돼버렸다. ‘세월’의 사전적 의미는 “흘러가는 시간”, “일정한 기간이나 때”를 의미한다. 그 말 속에는 시간의 덧없음, 화살같이 빨리 지나가는 속성, 그 흐름 속에서 별다른 열매도 없는데 어느덧 시간만 흘러간 자신의 인생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작년 송구영신 예배 때 주신 “2천년이 흘러가는 동안 세월의 유혹을 받았느냐?”라는 제목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세월’이 도대체 어떤 유혹을 한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인생의 최대의 적은 이 ‘세월’이 아닌가 싶다. 세월, 즉 시간이 흘러가면 사람은 변하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품었던 열정과 포부, 비전도 세월이 흐르다보면 변질되고 약해져서 급기야는 포기하게 된다. 두려움 없이 세상과 맞서 싸우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가도 어느덧 나이가 들면, 즉 세월이 흐르다 보면 세상과 타협하고 그 세상의 일부가 돼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가면 우리의 사랑과 믿음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첫 사랑의 뜨거움은 세월 앞에 차갑게 식어 사라지고 만지 오래다. 믿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세월의 유혹을 이기는 것은 ‘사랑과 믿음’ 두 가지 밖에 없다. 요셉이 13년의 고난 속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변치 않는 믿음으로 예상치 못한 자신의 환경과 싸우고 시간과 싸워 결국 승리한 것이다.
다시 5년 만에 그루터기를 맡고 보니 그새 5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늙어가는 것이므로 약해지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륜과 경험이 쌓이는 것이니 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자는 세월의 유혹에 넘어가는 인생이라면 후자는 세월을 딛고 오히려 전진하는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생전에 원로목사님께서는 경건회 때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옛날엔 어린애였는데 이제 같이 늙어가는구나!” 그냥 나이 드신 분들이 으레 하는 상투적인 말씀이려니 했지만, 지금 와서 곱씹어보면 “함께 믿음의 동반자가 되어 세월의 유혹에 맞서게 되었구나.”라는 의미로 읽혀진다.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 억만년이 지나갔다 해도 하나님은 과거나 오늘이나 내일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분이다. 그분의 말씀을 받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뜨거운 사랑과 변치 않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 또한 세월과 상관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리라.
2019년 그루터기에서의 새 출발, 함께 세월의 유혹을 헤쳐 나가는 젊은 동역자들과 함께 힘차게 열어가고자 한다.
ㅡ 홍봉준 목사
(그루터기紙 18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