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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거리 두는 삶 (요일 4:5-6)

코로나 19로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가 야기되었습니다. 특히 이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행으로 ‘거리두기’란 말뿐만 아니라 ‘잠시 멈춤’ 등 우리의 삶에 변화를 주는 용어들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적 의미를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과는 거리를 두고, 하나님과는 가까이 동행하는 삶

코로나 19를 통해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있다면, 사람이나 사물과 거리를 두고 접촉을 가급적 피하는 것입니다. 언론을 통해 전문가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호소하는 뉴스를 거의 매일 듣고 지내며,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세상과 밀착해서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요일 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뿐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에서도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것은 부정한 사람이나 질병 등과의 ‘접촉’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반면에 죄 사함과 거룩함의 비결도 거룩한 하나님과의 접촉으로 가능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리두기’의 대상으로 세상의 실체를 깨닫고, 하나님과는 더욱 가까이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에녹의 삶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잠시 멈추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은 너무나 바쁘고 분주합니다. 정신없이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다 보면 우리 주변을 살펴보고 자신을 점검할 겨를이 없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마지막 종말의 때의 현상으로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단 12:4).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교통의 발달로 점점 더 빨리 왕래하고 통신의 발달로 거의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일하며, 소통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그러한 왕래와 인적교류가 감염의 통로가 되어 잠시 멈추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우리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보기 위해 잠시 우리의 짐을 내려놓고 발걸음을 멈추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 온 땅에 충만케 되는 삶

회사든, 교회든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서 일을 하고 예배드리는 삶이 이제 코로나 19로 인해 분산되어 재택근무와 각자의 가정에서 드리는 온라인 예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군데 모였을 때 집단감염의 위험성이 증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교회도 성전예배가 폐쇄되었으나 오히려 성도들의 가정이 성전이 되고, 예배의 처소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온 땅에 충만하라” (창 1:28)는 말씀은 성도들이 세상을 향해 흩어질 때 성취됩니다.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예루살렘에 모여 있어야 하지만(행 1:4), 그 이후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흩어져야 합니다(행 1:8). 이것이 복음의 전파요, 승리입니다.

코로나 19로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지만, 오히려 영적으로 더 성숙 되고 믿음이 굳건해져서 모두 다 승리하는 그루터기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ㅡ 그루터기紙 1896호

홍봉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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