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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엘세바 언약과 언약의 재확증 (창 21:22-31)

하나님은 아담 타락이후 저주 받은 땅을 회복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찾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에 관한 약속을 하셨는데 그 언약의 성취가 시작된 곳이 ‘브엘세바’이다. 브엘세바에서 약속하신 자손 ‘이삭’이 탄생했고, 처음으로 이곳에서 가나안 땅 중 영구적인 소유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1.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그랄 왕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었다(창 21:22-31).


(1) 아비멕렉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하며 자기 당대뿐 아니라 후손에까지 영원히 파기 되지 않는 동맹 체결을 제의했다. 이때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했던 일을 책망했다. 팔레스타인은 강수량이 적어 물을 보관하는 ‘우물’이 절대적이었기에, 우물은 곧 세력이었고, 우물을 뺏는 것은 묵시적인 추방 명령과 같다.


(2)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언약을 체결할 때, 우물의 사용권(증거)을 영구적으로 보장받기 위해서 “암양 새끼 일곱(맹세의 엄중성)”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언약 체결 후 그 장소를 “브엘세바”라고 이름하며(카라=공식적으로 선언하다), 가나안 땅에 있는 우물을 합법적으로 차지하게 되었다.

가나안 땅의 최남단인 브엘세바는, 최북단의 ‘단’과 함께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관용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것은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삿 20:1, 삼상 3:20, 왕상 4:25). 그러므로 이 맹세의 우물 브엘세바를 아브라함이 소유한 것은, 장차 가나안 땅 전체를 반드시 소유하게 될 일에 대한 전조(前兆)이다.


(3) 아브라함은 언약 체결 후 브엘세바에 에셀나무(생명력 강한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창 21:32-33). 우물가에 나무를 심는 것은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복을 상징하며, ‘언약의 지속적인 견고성과 영구성’을 상징한다. 아브라함은 영생하신 하나님께서 브엘세바 우물을 아브라함 당대뿐 아니라 장차 이 땅에 거할 언약의 자손들에게 목마름 없이 마시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다.



2.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재 확증된 땅의 약속


(1) 이삭(창 26:1)과 야곱(창 28:13-15)에게 재 확증된 땅의 약속은 ‘천대에 명하신 영원한 언약’(시 105:8-11)


(2) 언약의 성취를 위해 우물을 매입하거나 팠던 3대

⓵ 아브라함은 끊임없이 우물을 확보하였다(창 21:25, 30, 26:15).

⓶ 이삭 : 샘 근원을 새롭게 찾기도 했고, 특히 ‘브엘세바’로 옮겨 아버지가 확보한 브엘세바 우물을 복원했다(창 26:18-22, 23-25).

⓷ 야곱 : 수가라 하는 동네에 “야곱의 우물”이 있다. 수가는 야곱이 세겜의 족장 하몰의 아들로부터 은 100개를 주고 구입한 세겜 땅(창 33:18-19) 근처에 있는 곳이다(요 4:5). 야곱은 바로 그 우물이 있는 세겜 땅을 요셉에게 주었고, 요셉은 그 땅에 장사되었다(창 48:22, 수 24:32).



결론: 언약의 확증을 받았던 3대 족장들은 그 언약이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도록 영구적인 땅을 확보해 나갔다. 우리도 언약의 성취를 위해 그 터를 준비했던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으로서 아버지가 판 우물을 복원하며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해나가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완성해 나가자.



ㅡ 그루터기紙 1866호

오인정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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