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변함없이 충성하는 청년 (삼하 19:24-30)


‘므비보셋’ 이름의 뜻은 ‘부끄럼, 추방자’ 이다. 사무엘하 9:13을 보면 양발이 절뚝발이인 비참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걸을 수도 없고 자기 맘대로 나귀도 탈 수 없었다.


그런데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이 도망을 갈 때. 시바가 나타나 자기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했다. 화가 난 다윗은 므비보셋 재산을 다 빼앗아 시바에게 주었다. 므비보셋 입장에서는 어떻게 종 시바의 말만 듣고 내 재산을 다 뺏을 수가 있느냐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므비보셋은 절대 다윗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변함없이 순종했다.



1. 므비보셋은 끝까지 다윗의 고난에 동참했다


모함 받아 재산을 다 빼앗긴 므비보셋은 다윗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 믿고 신앙생활 하다가 취직도 안 돼 진학도 안 돼 하는 일마다 안 되면 나도 모르게 원망한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한마디도 원망하지 않았다. 다윗이 압살롬에 쫓겨 도망치는 그 날부터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양말도 갈아 신지 않았다(삼하 19:24).

므비보셋은 나를 왕의 밥상에서 밥 먹기를 허락해주셨는데 내가 재산을 뺏겼다고 왕을 배신할 수 있느냐. 왕이 평안히 돌아오시기만 하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다윗의 고난에 동참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청년이 되어야 한다(벧전 2:21, 계 17:14,19:16). 내가 교회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곧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골 1:18, 24 엡 1:22, 23). 교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를 하고 일을 하면서 너무나 힘이 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더 감사할 때 변함없는 충성자가 되는 것이다(고전 15:58).



2. 므비보셋은 모든 결정을 다윗에게 맡겼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고 자기가 결정하지 않았다. 다윗은 시바의 말만 듣고 므비보셋이 자신을 배반하고 모반을 일으키려 했다 생각했다. 그 때 므비보셋은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고 모함했다 말했다(삼하 19:26-27).


잠 12:19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된 혀는 눈 깜짝할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진실이 밝혀졌을 때 므비보셋은 모든 결정을 다윗에게 맡겼다. 자신을 죽은 개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에 다윗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삼하 9:3, 19:28).



3. 므비보셋은 다윗의 결정에 진심으로 순종했다


다윗은 재산을 반반씩 나눠서 반만 므비보셋에게 주고 반은 그대로 시바가 가지도록 명령했다(삼하 19:29).

왜 다윗은 재산을 반반 나누라고 했을까? 다윗은 왕위에 다시 돌아왔지만 아직 불안한 상태이다. 그런데 시바 재산을 다 뺏으면 시바가 다시 배반을 일으킬 것 같았다. 나라의 평안을 위해 결정한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엔 불공평 하지만 우리는 다윗의 고충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든 회개시켜 붙들어서 같이 가야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 공의롭지 않아도 평화를 위해서는 용서하고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므비보셋은 그 다윗의 마음을 헤아렸다. ‘왕이 평안히 궁에 돌아온 것만도 감사한데 내가 뭘 더 요구하겠습니까. 반만 주지 마시고 전부를 시바에게 주십시오.’ 라고 얘기했다. 므비보셋은 내 입장보다 왕인 다윗의 입장을 생각했다. 나도 내 입장보다 하나님 말씀을 예수님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삼하 19:30).



결 론: 므비보셋의 변함없는 충성을 통하여 자식들이 복을 받았다.

하나님 앞에 변함없이 충성할 때 그 가문에 복을 주신다. 일한만큼 하나님이 여러분 삶에 반드시 복을 주신다(시 101:6, 잠 28:20).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계 2:10, 11). 우리 청년들이 이해가 안 될지라도 하나님이 나한테 말 못할 사정이 있나보다 생각하고 끝까지 충성하면 가문이 잘되고 자식들이 복을 받고 우리 앞길이 환하게 열릴 줄 믿습니다.



ㅡ 그루터기紙 1840호

이승현 담임목사

조회수 28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오늘 본문은 야곱의 약전(족보, 삶의 결과)을 말씀하면서 요셉에게 형제들과 다른 옷을 입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람의 신분, 지위, 능력 혹은 그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옷을 입은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사명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채색 옷', 다른 사람과 구별된 '별다른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에스겔 성전의 이상을 보여주시면서 성전의 제도, 식양, 출입하는 곳, 형상, 규례, 율례를 알려주신 후 성전의 모습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파괴되고 불태워진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새 성전에 관한 이상을 에스겔에게 나타내시고, 그 이상의 내용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풍족을 누리면서 사는 삶일까요? 그런 기준이라면 ‘잘 사는 성도’ 또한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여유를 누리면서 사는 성도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기준으로 ‘잘 사는 성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죄의 담으로 막혀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1. 잘 사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