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이 세상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속해 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1.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삶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나의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를 통해 부여받은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곧 나의 ‘옛사람’이 죽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옛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받기 ‘이전’의 나의 삶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선언한 사도바울은 그러한 존재를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은 나의 옛사람, 죄에게 종노릇 하던(롬 6:6) 이전 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찬송가 204장 3절 가사에 보면 “주 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이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과거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한 유혹에 넘어갈 때마다 우리의 마음엔 풍랑이 일고 흔들리지만, 주께서는 십자가에 그 모든 연약한 것을 못 박음으로 풍랑을 잔잔케 해주셨습니다.
2.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은 구체적으로 “세상을 향하는 삶에서 말씀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실망한 나머지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말씀을 깨닫고 나서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눅 24:33)” 다시 뜻을 위한 삶을 산 것과 같습니다. 이제 더는 세상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유혹에 흔들리는 나의 옛 자아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삶은 서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고 말이 아니라 사랑이 중요합니다. 베드로 기자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벧전 4:8)”라고 하였고, 잠언에는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7)”고 하였습니다.
끝으로 “오직 나를 구원하신 주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마치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을 보고 베드로 또한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할 때 물에 빠진 것처럼(마 14:28-32), 주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세상을 향할 때 그곳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홍봉준 목사
2020년 12월 06일 정기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