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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하나가 되라 (겔 37:16-19)

민족과 민족이, 형제와 형제가 대립하며 싸우고 가족 간에도 끊임없는 다툼과 분쟁이 일고 있는 세상입니다. 아담 타락 이후 끝없는 분쟁과 대립 속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는 놀라운 비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 민족의 하나 됨에 대한 비전의 말씀


에스겔 37장 전체는 골짜기 지면에 가득한 ‘마른 뼈’들이 생기를 불어넣으니 살과 가죽이 덮임으로, 사망을 당한 자가 살아나는 비전입니다. 이 말씀에 이어 유다의 막대기와 요셉의 막대기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된다는 본문의 말씀은 민족과 민족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스라엘이 하나 되어 다시는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겔 37:22). 이 비전대로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통일이 이루어지고, 지역과 이념으로 나뉘어 다투는 이 나라가 온전히 하나로 화합되는 은혜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2. 구속사적인 성취의 비전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된다는 말씀은 구속사적으로 횃불 언약과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1) 횃불 언약 성취의 비전 – 횃불 언약의 핵심적인 내용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4대 만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성취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삭과 야곱, 그리고 이후 4대의 인물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유다의 자손 중 살몬의 시대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반면에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은 애굽에서 임종하였으나 그의 유언대로 후손들이 요셉의 해골을 메고 출애굽 하여 가나안 땅 세겜에 매장함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횃불 언약의 성취는 유다의 막대기와 요셉의 막대기가 세겜 땅에서 하나로 만남으로서 온전히 성취된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한 성취 -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서 참 하나님으로 오신 분입니다. 역대상 5:1-2에서 말씀한대로, 야곱 이후 장자권이 요셉에게로 넘어갔으나 족보에는 그 실제 내용대로 기록하지 않고 유다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은 유다의 막대기를 통해, 그분의 신성은 요셉의 막대기를 통해 예표 되었고, 이 두 막대기가 하나로 만나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고 구속사역을 감당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3-4에서 예수님을 육신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 두 가지로 구분하여 소개함으로써 이를 명확하게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3. 변화를 통한 성취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 먼저 육신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은 속 사람과 겉 사람의 분열과 다툼을 겪다 죽게 되면 다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 ‘죽지 않고 변화되는’ 비밀을 선포하였습니다(고전 15:51). 이 변화의 구원은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지 않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하나 되는 것으로, 하나님 안에서 두 막대기를 하나 되게 하는 말씀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ㅡ 그루터기紙 1876호

홍봉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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