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군사학에서도 사용된다는 사실을 입대하고 알았다. 군사학의 명저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삼위일체론’이 등장한다. 전쟁의 3대 요소인 ‘정치, 국민, 군대’가 올바르게 작용할 때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강한 국방력과 첨단 무기만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일반적 관점과 사뭇 다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전쟁의 개념이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시대 이후 국민 전체가 동원되는 ‘국가 총력전’으로 확대된 데서 비롯된다. 왕권 시대에는 전쟁 수행의 대상이 군사와 용병이었고 전쟁에서 패하더라도 왕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였다면, 현대전은 국가 총력전으로 전쟁 양상이 바뀌면서 일반시민이 가장 큰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국가안보가 무너졌을 때 우리 민족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우리는 설교 시간과 근현대사를 배우며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민족 문화가 말살당하고, 영토의 자원과 재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약탈당하는 수모와 치욕을 겪었다. 치욕의 욕은, 욕될 욕(辱)으로 ‘수치스럽다, 더럽히다, 욕보이다’란 의미인데, 사람으로서 겪지 말아야 할 무지막지한 만행을 우리 조상들이 당했다는 것을 고상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70년 전 북한의 불법 남침으로 발생한 6ㆍ25전쟁은 또 어떠했나? 전 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됐고, 수많은 국군ㆍ민간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의 수는 군인의 수보다 약 2배 가까이 된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당한 분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러한 역사를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안보를 바로 보고 뜨겁게 기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안보가 우리들의 문제이자, 국가의 안보가 무너졌을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내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속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주 설교 시간에 근현대사시리즈를 읽는 북카페 행사 참여율이 저조했다는 전도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불과 2주 전 성황리 마친 플리마켓 행사와는 너무나 다른, 물질을 더 중시하는 우리들의 민낯이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럽고,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원로목사님께서 매주 ‘목요구국은사예배’와 매년 ‘나라사랑 호국 웅변대회’를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가 지식적으로 몰라서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자칫하면 잊기 쉬운 안보관과 국가관을 반복적으로 신념화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확신한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지도자들의 장기집권, 중국과 미국의 패권전쟁,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 북한의 도발 등 한반도 주변에 국제관계가 빠르게, 그리고 엄중하게 진행되는 상황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삼위일체론에서 나오듯 군대가 아무리 강해도 국민의 지지와 정치적 결단 없이는 강한 국방력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송나라 패망과 월남 패망의 사례에서 증명된 사실이다.그 어느 때보다 나라를 위한 기도와 올바른 선택이 중요해지는 시기임을 그루터기가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ㅡ 박광선 그루터기
(그루터기紙 19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