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언약을 받은 자 _ 삼하 7:8-17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언약하신 말씀이며, 하나님은 구절마다 다윗에게 언약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다윗은 법궤를 모셔오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법궤를 모셔온 것은 신앙의 회복을 말씀합니다. 사울 왕 때는 사울이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대상 10:13-14). 블레셋에게 빼앗긴 법궤를 찾아오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그가 죽게 된 이유도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대상 10:13-14).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잊어버릴 때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 법궤를 모셔오므로 신앙이 회복된 언약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모셔올 때 신앙이 회복됩니다.

그러면 다윗은 법궤를 어떻게 모셔왔습니까? 다윗은 법궤를 모셔오려고 이스라엘 전체에서 뺀 삼만 명을 택하였습니다(삼하 6:1-2). 이것은 최고의 정성을 다한 것입니다. 신앙인 중의 신앙인들을 뽑아서 법궤를 모셔온 것입니다.



2.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성전을 짓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을 말씀합니다. 자기의 일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자가 다윗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모두도 다윗과 같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이 될 때 다윗의 언약을 주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만 먹었어도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성경의 원리는 마음만 먹어도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3. 다윗의 언약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다윗 자신에 대한 약속입니다(삼하 7:8-16). 두 번째,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약속입니다(삼하 7:10-11). 다윗 자신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세 번째, 다윗의 후손에 대한 약속입니다(삼하 7:12-13).



결론. 이러한 다윗의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과 동일합니다.

첫 번째, 다윗 자신에 대한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창대케하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된다는 언약입니다(창 12:2). 두 번째, 다윗의 나라에 대한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고, 땅의 모든 민족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는 언약입니다(창 12:3). 세 번째, 다윗의 자손에 대한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룬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2). 그러므로, 다윗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맹세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언약하신 것처럼 그루터기 모두가 다윗의 언약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나다나엘 목사

2021년 07월 11일 정기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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