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네 손을 내밀라 (막 13:1-6)

본문에는 ‘손이 마른 사람’이 등장하고 그 병자를 예수께서 고쳐주시는 내용이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이 병자가 있었고 사람들은 예수를 송사하기 위해 안식일에 이 병자를 고치는가에만 초점을 모을 때,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는 질문을 통해 그들의 의도를 드러내셨다. 손 마른 자에게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된 것이다. 이 ‘손 마른 자’의 정체, 이를 고쳐주신 예수님의 기사에는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



1. 한 편 손 마른 사람의 실체

- 손 마른 자 : 이 질병의 정체 (엑세라이노: 중풍병이나 다른 사고로 손이 말라 힘을 못 쓰게 된 경우를 가리킴)

- ‘한편 손 마른 자’는 타락한 인류의 실상을 예표해주는 상징적 인물.


1) 손은 인류 최초로 범죄의 도구로 사용됨

-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손을 들어’ 따먹었다(창 3:6, 22). 손은 신체 중 가장 먼저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었기에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의 대상이고, 동시에 회복되고 치유되어야할 신체부위가 되었다.


2) 죄를 짓는 손

- 우리의 손에 죄악의 피가 묻어있기 때문에 기도해도 듣지 않으심 (사 1:15, 59:1-3)

① 가룟 유다의 손 – 예수를 팔아먹은 가증한 손이요. 피 흘리는 손

가룟 유다 또한 그 손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죄에 동참했다. 그러므로 그러한 손을 가진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지은 죄악의 손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내밀 때 고쳐주신다.

② 베드로의 장모의 손

세상일에 바쁘고, 세상일에 열병 들었던 그 장모의 손을 만져주신 결과 손에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받고 나았다. 즉시 베드로 장모는 ‘예수님의 손’이 되어 남은 생애 많은 고아와 과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손’이 되었다.

③ 죽은 소녀의 손

예수님께서 이 죽은 소녀를 살리실 때 이마에 대고 안수하거나 큰 소리를 외치는 등, 야단법석을 떨지 않고 “달리다굼” 하시며 ‘소녀의 손을 붙잡아 주시자’ 소녀가 살아났다(마 9:23-26).

④ 베드로가 고쳐준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면서 ‘오른손을 붙잡아 일으킬 때’(행 3:1-10) 발목에 힘을 얻고 나았다.

⑤ 왼손잡이 에훗(삿 3:15)

그는 일반적으로 오른 손에 장애가 있어서 왼손을 쓰는 사람이었다. 이는 당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여겨져 결코 중요한 인물로 쓰임 받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들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2. 우리의 회복된 손


1) 능력을 베푸는 손

- 모세가 손을 들 때마다 애굽 왕을 비롯해 애굽 전역에 무시무시한 재앙이 임하였다. 그러므로 모세는 축복의 손이요 심판의 손이 되었다.


2) 선을 베푸는 손

- 예수님의 손은 한 번도 말라서 오그라든 적이 없었다. 늘 분주하게 일하시는 그 손은 항상 펴져있었다. 그분의 손이 펴짐으로 우리의 마른 손이 힘을 얻고 움켜쥔 손을 펴서 남들에게 선을 베풀고 구제할 수 있게 되었다. 주님의 일하는 손, 선을 베푸는 손을 본받자.


3) 서로 손을 잡고 화해하는 손



결 론: 2019년 우리의 모든 삶을 전능하신 ‘아버지 손’에 부탁하는 역사(눅 23:46).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우리를 꽉 붙잡아 보호해주고, 인도해주시고, 우리의 손을 펴주실 때 우리의 손으로 봉사하며, 선을 베풀며,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복된 역사가 있다.



ㅡ 그루터기紙 1836호

홍봉준 목사

조회수 6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오늘 본문은 야곱의 약전(족보, 삶의 결과)을 말씀하면서 요셉에게 형제들과 다른 옷을 입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람의 신분, 지위, 능력 혹은 그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옷을 입은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사명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채색 옷', 다른 사람과 구별된 '별다른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에스겔 성전의 이상을 보여주시면서 성전의 제도, 식양, 출입하는 곳, 형상, 규례, 율례를 알려주신 후 성전의 모습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파괴되고 불태워진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새 성전에 관한 이상을 에스겔에게 나타내시고, 그 이상의 내용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풍족을 누리면서 사는 삶일까요? 그런 기준이라면 ‘잘 사는 성도’ 또한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여유를 누리면서 사는 성도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기준으로 ‘잘 사는 성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죄의 담으로 막혀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1. 잘 사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