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세다 들판에서 오병이어 기적 후에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으로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헤아리며, 오늘날 우리가 먹어야 할 참 양식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벳세다 들판과 광야의 공통점
이 두 장소는 모두 사람의 능력이나 힘으로 양식을 얻을 수 없는 장소요 환경이라는 점입니다. 특별히 출애굽 후 한 달이 되어 준비한 식량이 떨어졌을 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준비한 식량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고기 가마와 배불리 먹던 떡”을 회상하며 이곳 광야로 인도하여 온 회중으로 주려죽게 한다고 불평하였습니다(출 16:3). 준비한 양식이 바닥을 보일 때 그들의 신앙도 밑천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마 6:25)를 염려하는 인생의 본질은 광야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39년 11개월 동안이나 하늘 양식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고 책임지셨습니다. 그런 은혜를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죽게된 이유가 무엇일까? 벳세다 들판에서 예수님은 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늘 양식, 만나의 영적 의미
첫째는 감사의 양식입니다. 벳세다 들판의 오병이어 기적도 예수님의 ‘감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기적인 것처럼, 광야에서 수고도 아니하고 하나님이 내려주신 하늘양식으로 40여년을 지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보이는 양식뿐 아니라 감사의 양식을 먹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양식입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사랑의 정신이 만나와 오병이어 속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출 16:17-18). 이를 묵상하던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8:14)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것을 내어놓고 남을 배려하는 사랑으로 모두가 부족하거나 넘침이 없이 필요한대로 공급받는 은혜의 양식이 바로 만나입니다.
셋째는 예배의 양식입니다. 만나는 6일 동안 내리고 7일째는 그쳤습니다. 만나를 거두는 수고와 노동, 욕심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하는데 집중하라는 의미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고, 주신 은혜와 사랑으로 한 주간의 양식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 론 : 40년을 공짜로 먹어도 이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에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다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신령한 만나 되시는 그분을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늘 예배하며 영적 교제를 나누는 믿음으로 받아먹는 것이 성도의 참된 양식입니다.
ㅡ 그루터기紙 1867호
홍봉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