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뭔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으로, 또한 그 하나님을 ‘기다리는 백성’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기다리심 – 은혜를 베풀기 위함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은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행동대로 바로 보응하시지 않고 기다려 주십니다. 이는 마치 집을 나가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한 탕자에 대해 책망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 주시며 맞이해 주신 것과 같습니다(눅 15:20). 탕자와 같은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기다리심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안타까운 간구와 뜨거운 눈물이 담겨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일어나심 – 긍휼을 베풀기 위함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리 기다려서 죄인 된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고 그 악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 기다리심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이 필요한 데, 그것이 바로 ‘일어나심’입니다. 롯과 그 가족의 손을 잡아 이끌어 내신 것처럼(창 19:10, 16-17)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역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어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기다리는 백성
본문에서는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 생각과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과 말씀을 기다려서 그에 순종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롯과 아브라함이 분가할 때, 롯은 스스로 눈을 들어 요단 동편을 선택하여 갔지만,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헤브론에 정착한 것입니다(창 13:14). 결국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기다림으로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그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시온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
본문 19절에서는 “시온에 거하고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이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백성들이 그곳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과 말씀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다림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되어 아예 하나님의 품에 거하는 백성들은 다시는 통곡하지 않고 그 부르짖는 소리에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53대 임원단을 선출하는 정기총회를 맞아 새롭게 선출된 임원단들은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거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그 말씀을 앞세워 일하는 훈련과 체험으로 채워지는 1년간의 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ㅡ 그루터기紙 1914호
홍봉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