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주보는 흰 눈 밭에 찍은 우리의 발자국이다. 새하얀 눈길에 발을 내밀려면 설렘과 살짝 밀려오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어 한발자국 내딛은 발자취가 어느덧 1,900번째가 되었다.40여년의 시간 속에 그루터기라는 이름으로 남긴 족적에서 청년의 숨결과 40여년의 평강의 역사의 문양을 읽는다.
봄의 그루터기는 설렘의 발자국을 남긴다.
설렘은 호기심이다. 언 땅을 뚫고 나온 새 싹과 죽음처럼 칙칙한 겨울을 제치고 얼굴 내민 온갖 색상의 꽃들의 이름은 호기심이다. 첫사랑의 설렘이 넘칠 때 모든 에너지가 분출하고 인생을 살아갈 이유와 힘을 얻는 것처럼 그루터기는 말씀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으로 충만한 곳이다. 새 순과 꽃망울이 자기 껍질을 터뜨리고 세상으로 튀어 나오듯 아버지의 일꾼들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오고 내면 속에 잠자던 아름다운 형상과 영성이 터치고 나오는 봄의 전당이다.
여름의 그루터기는 이글거림이다.
그 이글거림으로 우주를 영글게 하듯, 그루터기에 뜨는 태양은 엄한 아버지와 같다. 잘못할 때는 내 속의 죄를 다 태울 듯 내려쬐고, 두 손 들고 나아올 때는 내 영혼까지도 익게하는 따사로운 햇살이다. 살며, 사랑하며, 이글거리는 뜨거움으로 아버지를 갈망하며 열정과 헌신으로 땀 흘리는 곳이 그루터기다.
가을의 그루터기는 성숙함이다.
연녹색, 진초록인줄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빨강 노랑으로 변신해 있는 새 모습이 언제나 신선함과 성숙함을 유지하는 곳. 봄에 선보인 아름다운 꽃망울도, 여름의 짙은 이파리도 스러져간 자리에 어느덧 탐스러운 열매로 주인의 손을 기다리는 성숙한 그루터기는주인의 손길이 가장 먼저 뻗치는 첫 열매이다.
겨울의 그루터기는 따스함으로 옷 입는 곳이다.
찬바람이 매섭게 내 가슴을 얼리려 해도 벽난로 같은 아버지의 사랑이 겉옷을 벗겨주고, 따뜻한 차 한잔 호호 불어 마시듯 회원들의 입김이 위로가 되는 곳.
봄부터 겨울까지, 우리는 아파하며 달려간다. 봄과 이별해서 여름이 울고, 겨울이 달려드니 가을이 아파한다. 그 아픔 속에 어느덧 나이테 하나 늘며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영글어 간다. 그루터기 마을에 사계절이 있고, 저마다의 나무와 꽃들이 제 계절에 아름다움을 뽐내며 달려가는 곳.
또 다시 아무도 가지 않은 눈밭에 새 발자국을 내민다. 여전히 두렵고 설레이며 아파하며 1,901호를 향해 내딛는 발은 분명 그전보다 힘차고 선명하다.
ㅡ 홍봉준 목사
(그루터기紙 190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