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구속사와 분리의 역사(벨렉-데라) (창 10:25, 11:18-32)

인간이 연합하여 하나님께 도전하며 바벨탑을 쌓을 때, ‘언어의 혼잡’이라는 하나님의 강력하고, 강제적인 분리의 조치로 세상이 나뉘게 되었다. 이때 ‘노아-셈-아르박삿-셀라-에벨’은 죄악의 탑을 쌓는 데 동조하지 않고 신앙의 이주를 하였지만, 벨렉은 분리되지 못하고 바벨탑을 건축한 자들과 함께 거하였다. 그곳에서 ‘벨렉-르우-스룩-나홀-데라-아브라함’이 탄생하였는데, 하나님은 이러한 가운데 태어난 아브라함을 찾으셨고, 그에게 ‘떠나라’라는 분리의 명령을 내리셨다.



1. 벨렉부터 데라까지(분리되지 못한 자-하나님이 제시하신 분리의 방법)


(1) 벨렉 = 분리되다, 나누다 : 세상은 교만이나 자기 안주와 같은 바벨탑을 쌓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혼합(바벨)되어 있는 이 세상의 부정한 상태에서, 믿음과 불신, 선과 악, 빛과 어둠, 영과 육이 분리되기를 원하신다(고후 6:14-16).


(2) 르우 = 친구, 특별한 관계 : 세상이 나뉘며 새 공동체가 만들어지던 때에, 생존을 위한 세상과의 이해관계, 유대 관계, 친분관계가 중요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친구 되어 친밀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갈 길을 밝히 알려 주신다(요 15:14-15).


(3) 스룩 = 넝쿨, 매우 단단한 힘 : 스룩은 인본주의 세상에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성도의 영혼을 담장의 넝쿨처럼 칭칭 감아 함께 얽히게 함으로써 세상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분리의 역사가 가능케 된다(요 15:7, 고후 5:14).


(4) 나홀 = 거친 숨, 헐떡거리다 :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헐떡거리는 삶이 아니라, 세상의 죄악과 맞서 “선한 싸움”(고전 9:25, 딤후 4:7)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열심(고후 11:2)으로, 구속사의 완성을 위해 얼마나(고후 7:11)의 간절함을 가지고 더 많이 수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전 15:10).


(5) 데라 = 이주하다, 지체하다 : 사단은 하란과 같은 물질적인 풍요를 통해 우리를 붙잡고 하나님의 뜻이 지체되도록 만들지만, 최종 목적지를 향한 시선 집중으로 가나안 천국을 향해 끊임없이 이주해야 한다.



2. 아브라함의 분리 : 아브라함이 ‘떠나라’는 하나님의 분리의 명령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제시한 분리의 방법을 따랐기 때문이다.아브라함의 일생은 벨렉-데라의 일생과 달리 하나님의 친구가 되어(대하 20:7, 사 41:8, 약 2:23), 말씀만을 의지하며 좇아갔고(창 12:4) 구속사의 완성을 위해 헐떡이며, 지체하지 않고 나아간 결과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하나님의 영역을 확보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루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결론 : 하나님은 분리를 통해 성도의 신앙을 성숙하게 만드신다(사 55:11, 고후 6:14-7:1). 말씀의 명령에 따라 분리되는 삶은, 때론 기득권의 상실, 안식처의 상실, 고독한 나그네 길이 될 수도 있고,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거룩하고 영예로운 길이다. 아브라함이 철저히 분리하여 나아갈 때, 마침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창 22:12)로 인정해 주시고 그를 통해 구속사를 이루어 가셨다.우리도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거룩한 분리의 길로 나아가며 구속사의 한 몫을 담당하는 자가 되자.



ㅡ 그루터기紙 1904호

오인정 전도사


조회수 12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오늘 본문은 야곱의 약전(족보, 삶의 결과)을 말씀하면서 요셉에게 형제들과 다른 옷을 입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람의 신분, 지위, 능력 혹은 그 사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옷을 입은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사명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채색 옷', 다른 사람과 구별된 '별다른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에스겔 성전의 이상을 보여주시면서 성전의 제도, 식양, 출입하는 곳, 형상, 규례, 율례를 알려주신 후 성전의 모습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파괴되고 불태워진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새 성전에 관한 이상을 에스겔에게 나타내시고, 그 이상의 내용을 이스라엘에게 보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풍족을 누리면서 사는 삶일까요? 그런 기준이라면 ‘잘 사는 성도’ 또한 세상에서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여유를 누리면서 사는 성도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기준으로 ‘잘 사는 성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죄의 담으로 막혀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1. 잘 사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