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동행-영원’의 축복 (고전 9:16-22, 마 26:36-37)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계속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함께하면 점점 계속 파괴됩니다(잠 13:20). 누구와 같이하느냐에 따라 그 영원(최후)은 나뉘게 됩니다. 지금 나는 누구와 같이하며 그 가치를 얻고 있습니까?



1. 서로의 유익을 위해 같이하는 자(동행하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고후 8:16-22).


(1) 예루살렘(구속사 본부)에 거액의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받은 디도 : 그에게는 바울과 이 연보를 전달하길 소원하는 교인들과 ‘같은 간절함’이 있었기에 택함을 받았습니다. 이는 평상시 신앙의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2) 또 여기에 이름 없는 한 형제가 동행하였는데,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받는 사람으로,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돼있지는 않지만, 생명책에 기록될 이름, 하나님이 기억해 주실 이름임을 확신하면서 디도와 협력했습니다.


(3) 또 여기에 이름 없는 한 형제가 동행하였는데, 이 사람도 ‘같은 간절함’을 여러 번 시험한 결과 더욱 간절함을 갖고 있었기에 택함 받았습니다. 즉, 이들은 ‘같이의 가치’를 깨닫고 구속사의 전진과 완성을 향하여 연합하였습니다. 이들은 그 길에 죽음의 위협과 아픔과 고난이 있어도 ‘같은 간절함’으로 이겨 나갔습니다.



2. ‘같이(=함께, 동행)’를 요구하시는 예수님(마 26:36-46)


(1)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저주하며 부인할 것까지도 알고 계셨지만, 함께 기도하길 원하셨습니다. 이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눅 22:40).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할 때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행 2:1-4).


(2) 예수님은 제자들이 함께 기도하지 못했지만, 제자들을 향해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강력히 요청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을 유일한 길은 예수님밖에 없으며(요 14:6), 예수님과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고, 나누려 해도 나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3) 이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말씀을 깨닫고 믿은 무리는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했고, 모이기에 힘썼으며,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구속사를 위해 헌신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행 1:14, 2:46, 4:31-32).


결론 : 같이의 가치 ‘영원’ - 예수님이 ‘함께 가자’ 말씀하신 것은 ‘목적이 뚜렷하니 함께 가자’는 것이다. 그 목적은, 너는 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살전 5:10)!


우리가 ‘같이의 가치’를 깨닫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나아갈 때, 그 동행은 ‘생명을 살리는 영원한 동행, 영원한 생명의 축복’이 됩니다. 에녹도 같이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영원의 축복을 받았듯이, 오늘 우리에게 함께 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그 길에 함께 가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많아지길 원하시는 예수님의 소원을 붙잡고 우리 같이 일어서서 구속사의 완성을 향해 영원히 같이 가는 그루터기가 되길 바랍니다.



ㅡ 그루터기紙 1882호

오인정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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