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조건이 넘쳐나게 해 주세요.' 저의 평소 기도제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발간된 휘선 설교집 2권을 읽으면서, 또 감사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그 기도 제목이 어쩌면 나의 교만한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감사의 조건이 넘쳐나게 해주시라고 요구만 했지, 진정 나의 삶 속에서 감사를 찾고 있긴 했을까 라는 생각에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시계추가 '똑딱' 할 때 '똑'만 빠져도 범사가 아니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진짜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쉴 틈이 없는 감사란 무엇일까? 들숨 때 감사, 날숨 때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그렇게 감사할 수 있을까?, 욥처럼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고통이 내게 온다면, 나는 그 상황에서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을까?’ 등 많은 생각으로 저의 삶과 신앙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많이 부르는 찬양들 중, 감사는 제 입술로 수백 번 고백했던 곡조 있는 기도였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찬양의 작사가 송명희 시인은 뇌성마비 장애인이지만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라고 몸이 불편한 자신의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노래하고 있었고, 우리가 흔히 부르고 있는 '날 구원하신 주 감사' 찬양에서도 응답하신 기도, 거절하신 기도,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아픔까지도 감사함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매일의 삶 속에 저 자신만의 감사를 찾아보고자 하였고, 저도 모르게 망각하고 있었던 부분에서 감사가 넘쳐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할 때에 삶을 돌아보며 회개 하는 가운데 모든 것이 감사했고, 회개를 통해 감사 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회사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상사의 마인드나 업무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고 가끔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저를 발견하는 순간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3:15) 라는 말씀이 떠오르게 하심으로 바로 저의 모습을 회개하고, 그래도 일 할 수 있도록, 재물 얻는 능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했고, 실수 때문에 윗사람에게 혼날 때도, 정신적으로는 힘들지만 그 과정을 통하여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심에 감사했습니다. 교회에서 주일 경건회에 늦었을 때, 회개함과 동시에 그래도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세상에서나 교회에서나 몸이 조금 지치고 힘들어도, 마음은 지치지 않도록 산 소망을 주시고 늘 은혜가운데 채워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넘어지거나 사고가 있어도 늘 지켜주시고, 그를 통해 저의 생각과 삶을 돌아보게 하셔서 거룩한 길로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감사하다보니,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시고, 말할 수 있는 입을 주신 것도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삶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시고, 누리게 해 주시고 보호하여 주심에 더욱더 감사했고, 그 가운데 날 향하신,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넓고 크신 사랑을 벅차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너무나도 당연해지는 모든 일상 속에 감사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의 조건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온전한 감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저와 모든 그루터기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ㅡ 이진원 부회장
(그루터기紙 1872호)